
- 쾨헬 번호
- K9 491 | K6 491
- 장르
- 협주곡
- 형식
- 피아노 협주곡
- 조성
- C Minor
- 날짜
- 24 3월 1786
- 장소
- Vienna
- 나이
- 30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4번 다단조 K. 491은 1785–86년 겨울에 작곡되어 1786년 3월 24일 완성된 작품으로, 확장된 관현악 편성과 다단조의 비극적 성격으로 특별한 위상을 지닌다.
배경과 작곡 맥락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85–86년 겨울 동안 피아노 협주곡 제24번 다단조 K. 491을 작곡하여 1786년 3월 24일 완성했다[1]. 당시 빈의 음악계는 활기로 가득했다. 1780년대 중반에 이르러 도시는 음악으로 북적였고, 모차르트·요제프 하이든·크리스토프 글루크 같은 작곡가들이 중심에 서며 종종 “황금기”로 불렸다[2]. 1781년 잘츠부르크 궁정 직책을 떠나 빈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시작한 모차르트는, 수입을 위해 자신의 작품을 공개 연주하는 데 크게 의존했다[3]. 그는 자신이 협연자로 나서는 정기 구독(Subscription) 연주회를 조직했는데, 안정적인 후원자 없이 성공을 도모하는 위험 부담이 있으면서도 혁신적인 방식이었다[3]. 다단조 협주곡은 빈에서의 네 번째 연주 시즌을 위해 쓰인 작품으로[4], 모차르트가 짧은 기간에 연이어 내놓은 협주곡들(제22번 E♭장조 K.482, 제23번 A장조 K.488)의 흐름 속에 놓인다[4]. 실제로 1786년에 모차르트는 피아노 협주곡 세 곡(제23·24·25번)을 썼는데, 이는 그가 정기 구독 연주회를 위해 만든 마지막 묶음에 해당한다[5].
모차르트는 이 협주곡을 완성한 지 몇 주 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K.492) 초연을 맞이했다[6]. 그 오페라가 주로 장조로 빛나는 이탈리아 희극이라면, 이 협주곡은 모차르트 작품들 가운데 드문 단조 작품으로, 더 어둡고 진지한 어조를 반영한다[7]. 일부 학자들(피아니스트이자 음악학자인 로버트 D. 레빈 등)은, 모차르트가 희극 오페라를 쓰는 동안 이 협주곡과 그 직전 작품들이 보다 “어둡고, 비극적이며, 열정적인” 창작 충동을 발산하는 통로가 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해 왔다[7][8].
모차르트는 1786년 4월 초 열린 자선 연주회 또는 ‘아카데미(academy)’ 연주회에서 직접 연주할 목적으로 이 다단조 협주곡을 썼을 가능성이 크다. 그 시기 관객들은 새 작품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9]. 초연은 빈에서 모차르트가 건반에서 지휘하며 독주를 맡은 형태로 이루어졌고, 1786년 4월 7일 부르크테아터에서였을 가능성이 높다[10]. (동시대 기록은 정확한 날짜에서 엇갈리며 4월 3일 또는 7일로 전한다[11].) 부르크테아터는 황제 요제프 2세가 국립극장으로 지정한 제국 궁정극장으로, 합스부르크 궁전 인근의 웅장한 공연장이자 빈 문화생활의 중심지였다[12]. 초연에 대한 상세한 평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작품의 극적인 다단조 성격과 복잡성은 통상적으로 더 가벼운 곡목이 주를 이루던 무대에서 확연히 두드러졌을 것이다. 음악학자 알프레트 아인슈타인은 빈 관객들이 그 “어둡고, 비극적이며, 열정적인” 표현에 놀랐을 법하다고 상상한다[8]. 특히 모차르트는 자필 악보에서 독주 피아노 파트를 끝까지 완전하게 기보하지 않았는데, 많은 음계·아르페지오 구절이 윤곽만 제시되어 있어 공연 중 기교적 세부를 즉흥으로 보완했음을 시사한다[13]. 이 협주곡은 1800년에 이르러서야 출판되었는데, 모차르트의 미망인 콘스탄체가 원고를 출판업자 요한 안드레에게 판매하면서 가능해졌다[14]. 자필 악보는 이후 1894년 런던 왕립음악대학(Royal College of Music)으로 전해져 현재 그곳에 소장되어 있다[14].
편성과 관현악법
피아노 협주곡 제24번은 모차르트의 다른 어떤 피아노 협주곡보다도 큰 규모의 관현악 편성으로 쓰였다[15][16]. 독주 fortepiano(모차르트 시대의 초기 피아노)와 함께, 현악기군 및 유난히 풍성한 목관·금관이 동원된다. 즉 플루트 1,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2, 트럼펫 2, 그리고 팀파니로 구성된다[16]. 실제로 이 작품은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동시에 악보에 포함된 유일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이기도 하다[16]. 확장된 목관은 이 작품에 독특한 음향을 부여한다. 모차르트는 빈의 관악 연주자들의 수준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들을 단순한 배경 반주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표현적인 목소리로 다루며 파트를 썼다[17]. 관악기들은 종종 스스로 주제를 짊어지며, 학자 로버트 레빈의 말처럼 세 악장 모두에서 때로는 “현악을 완전히 옆으로 밀어낼” 정도로 전면에 나선다[16]. 피아노와의 대화 속에서, 또는 화성적으로 풍부하고 따뜻한 합창처럼 쓰이는 이러한 ‘대화체’ 관악 사용은 혁신적이었고 큰 영향을 남겼다. 당시 오케스트라에서 비교적 새로운 악기였던 클라리넷의 도입은 모차르트가 분명히 사랑했던 특별한 색채를 더한다[18]. 실제로 모차르트는 개별 관악 연주자들을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들의 강점을 살려 고유한 음색과 기량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작곡했을 것이다[19]. 그 결과 이 협주곡은 거의 교향곡에 필적하는 폭을 지닌 관현악법을 보여 주며, 다음 세기의 극적인 피아노 협주곡들을 예고한다.
비킹구르 올라프손 • 파보 예르비 •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형식과 음악적 성격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4번은 고전주의 협주곡의 3악장 구성을 따르지만, 형식과 양식에서 상상력이 빛나는 장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각 악장은 다음과 같다.
- Allegro (1악장, 다단조, 3/4) – 1악장은 폭이 넓고 정서적으로 강렬하며, 당시까지 모차르트가 협주곡에서 쓴 1악장 중 가장 길었다[20]. 이 악장은 이중 제시부를 지닌 소나타 형식으로 전개된다. 먼저 오케스트라가 주요 주제들을 제시하고, 이어 피아노가 같은 재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다룬다. 특히 오케스트라가 처음 내놓는 제1주제는 각이 진 선율과 반음계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반음계 12음을 모두 사용하는 이 장치는 모차르트가 가장 진지하고 “열정적인” 정서를 위해 아껴 두었던 수법으로 여겨진다[21]. 어둡고 소용돌이치는 관현악 서주 뒤, 독주자는 앞서의 관현악 선율을 그대로 받는 대신 자기만의 새로운 주제로 시작해 청중을 놀라게 한다[22]. 악장 전체에서 모차르트는 ‘교과서적’ 규칙을 비켜가며 피아노 파트와 목관에 여러 새로운 주제를 등장시켜, 주제 전개를 이례적으로 풍성하게 만든다[22].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상호작용은 대비가 극적이고 거의 오페라적이며, 이는 모차르트가 무대 장면을 써 온 경험과 무관하지 않게 느껴진다[23][24]. 전개부는 복잡하고 전조가 잦아지며, 독주자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투쟁감이 고조된다. 재현부에서 모차르트는 주제의 순서를 교묘히 재배치하고 일부 재료를 간결하게 압축(‘telescoping’)하여 응집력을 유지한다[25]. 이전의 몇몇 협주곡들과 달리 모차르트는 이 악장을 위한 카덴차를 남기지 않았고(후대 연주자들이 각자 보완했다), 코다에서는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에 합류해 결말을 향해 함께 몰아간다[26]. 악장은 단호하게 다단조로 끝나며, 작품의 진지한 성격을 강조하는 관현악 투티로 마무리된다.
- Larghetto (2악장, E♭장조, 4/4 “cut time”) – 느린 중간 악장은 관계장조로 옮겨가 1악장의 다단조 드라마에서 잠시 숨을 고르게 해 준다[27][28]. 모차르트는 서두에서 단순하고 고요하게 서정적인 주제를 제시한다. 이는 1악장의 복잡함과 대조되는, 무장해제될 만큼 소박한 선율이다[28]. 이 Larghetto는 부드럽게 장식된 노래 같은 성격을 지니며, 종종 야상곡적(nocturnal) 혹은 시적인 분위기로 묘사된다[29]. 형식적으로는 느슨한 ABA 구조(론도에 가까운 또는 아리아에 가까운 형태)를 따른다[30]. 피아노 선율은 약음기 처리된 현악 위를 우아하게 떠다니고, 확장된 목관은 질감에 빛나는 색채를 더하며 때로는 독주자와 함께 실내악적인 친밀감 속에서 단독으로 연주되기도 한다[31]. 이 악장의 아름다움은 피아노와 관악 사이의 섬세한 대화에 부분적으로 깃들어 있으며, 그 따뜻함과 표현력에서는 모차르트가 이후에 보여 줄 클라리넷 글쓰기의 예감을 들을 수도 있다. 두 차례에 걸쳐, 평온한 E♭장조 분위기는 단조 에피소드로 잠깐 어두워진다(한 번은 다단조로 스치듯 지나가고, 또 한 번은 A♭장조의 침잠한 색채로 기운다)[28]. 이러한 단조로의 일탈은, 부드러운 주제가 돌아오기 전에 정서적 깊이를 더해 준다. 평자들은 흔히 이 악장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ethereal beauty)”[28]에 감탄하곤 한다. 폭풍 같은 양 끝 악장 사이에서 평정과 위안을 건네는, 모차르트 선율 재능의 가장 순수한 발현 가운데 하나다.
- Allegretto (3악장, 다단조, 주제와 변주) – 통상적인 경쾌한 론도 피날레 대신, 모차르트는 다단조 주제에 대한 여덟 개의 변주로 작품을 마무리한다[32]. 서두에서 오케스트라가 제시하는 주제는 다소 금욕적인 성격을 띠는, 단단하고 각진 춤곡풍 선율이다. 각 변주는 주제의 기본 윤곽을 유지한 채 서로 다른 표현 뉘앙스와 음형을 탐색한다. 제1변주에서 피아노가 들어오자마자 주제를 장식하며, 독주자는 관현악 반주 위로 빠른 패시지를 엮어 나간다[32]. 뒤이은 변주들은 명암의 교차를 보여 준다. 예컨대 한 변주는 보다 따뜻한 A♭장조로 미끄러지며 목관이 이끄는 잠깐의 “더 행복한” 전환을 제공하고[33], 또 다른 뒤이은 변주는 다장조로 옮겨가 단조의 긴장을 잠시 걷어내며 더 밝은 음색을 들려준다(이때도 관악 독주가 부각된다)[34]. 그 사이의 다른 변주들은 다시 폭풍 같은 다단조 정서로 회귀하는데, 그중 하나는 반음계로 가득한 기교적 패시지에서 피아노를 단독으로 부각시켜 1악장의 강렬함을 상기시킨다[35]. 질감과 대위법은 점점 더 정교해지며, 때로는 4성부 모방 진행을 통해 드라마에 학구적인 성격까지 덧붙인다[36]. 변주가 끝을 향해 갈수록 모차르트는 짧고 긴장감 넘치는 변주(축약된 끝에서 두 번째 변주)를 도입하고, 이는 짧은 카덴차 또는 독주적 화려구로 이어진다[37]. 이어지는 마지막(제8) 변주는 피아노로 시작한 뒤 오케스트라가 합류해 절정의 진술을 만든다[38]. 특이하게도 모차르트는 마지막 변주와 코다에서 박자를 6/8로 바꾼다[39]. 그 결과 살짝 흔들리는 시칠리아나(siciliana) 같은 리듬이 생겨 해소와 종결의 감각을 제공하는데, 이는 변주 형식을 유지하면서도(종종 6/8인) 전형적인 론도 피날레를 향한 고개 끄덕임처럼 들린다. 협주곡은 통상적인 승리의 결말 없이, 조용하고도 처연하게 다단조로 닫히며 작품 전체의 사색적이고 “박명(暮色, crepuscular)”의 분위기를 재확인한다[40].
수용과 유산
모차르트의 다단조 협주곡은 오랫동안 그의 최고 업적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어 왔다. 모차르트 시대에는 단조 작품이 비교적 드물었고, 이 협주곡의 깊이는 이를 듣거나 연구한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1786년 빈 청중의 즉각적인 반응을 알려 주는 문헌은 부족하지만, 이 협주곡의 명성은 동료 작곡가들 사이에서 빠르게 자리 잡았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이 작품을 깊이 존경했는데, 리허설을 들은 뒤 “우리는 결코 그런 것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라고 고백했다는 전언이 있다[41]. 베토벤이 후일 쓴 피아노 협주곡 제3번 다단조는 조성, 드라마, 폭넓은 관현악법 면에서 모차르트의 본보기가 미친 영향을 보여 준다[41]. 요하네스 브람스 역시 이 협주곡을 숭배하다시피 했고, 클라라 슈만에게 이 곡의 연주를 권했으며 1악장을 위한 자신의 카덴차까지 남겼다[42]. 브람스는 이 작품을 “영감 받은 아이디어로 가득한 예술의 걸작”이라 부르며,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악보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43]. 이러한 찬탄은 여러 세대의 연주가와 학자들에 의해 되풀이되어 왔다. 예컨대 음악학자 아서 허칭스는 피아노 협주곡 제24번을 모차르트 최고의 협주곡이라 선언하며, 모든 부분이 “하나의 장엄한 전체”를 이룬다고 칭찬했다[44]. 또한 학자 알렉산더 하이엇 킹은 이 작품을 “(모차르트 협주곡) 전 시리즈 가운데 가장 숭고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 작곡된 가장 위대한 pianoforte 협주곡 가운데 하나”라고 묘사했다[45].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며 다단조 협주곡은 레퍼토리의 중심에 남아, 고전주의적 형식과 낭만주의를 예고하는 정서적 강도의 결합으로 사랑받아 왔다. 극적인 단조 조성, 풍부한 목관 글쓰기, 변주로 된 혁신적 피날레 같은 독자적 특징은 이 작품을 모차르트의 다른 작품들과 구별 짓고, 오늘날까지도 연주자와 청중을 매혹한다. 20세기 초 커스버트 거들스톤과 알프레트 아인슈타인도 이 협주곡을 깊이 있고 비극적인 성격으로 특별히 지목하며, 모차르트 시대에 이런 작품이 얼마나 이례적으로 들렸을지를 강조했다[46]. 오늘날 이 곡은 연주회와 음반에서 빈번히 다뤄지며, 종종 “진보적인(advanced)” 작곡기법과 표현의 깊이로 주목받는다[15][45]. 피아니스트들은 이 작품을 우아한 비르투오시티를 과시하는 수단으로만이 아니라, 교향곡적 스케일과 독주자·오케스트라 사이의 오페라적 대화를 품은 작품으로 접근한다. 요컨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4번 다단조는 빈 시절의 정점에 놓인 걸작이다. 1786년이라는 특정한 순간(작곡가의 역량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서 태어났지만, 그 유산은 시대를 훨씬 넘어 울려 퍼지며 고전 협주곡 정전에서 가장 위대한 협주곡들 가운데 하나라는 위상을 확고히 한다.
출처:
출처
Mozart’s autograph score and correspondence as summarized in [14][16]; program notes from the Fort Collins Symphony[47][18] and LA Philharmonic[48][49]; scholarly assessments compiled in Wikipedia[15][50]; and historical context from Evanston Symphony Orchestra archives[5][2].
[1][4][6][7][8][15][41][42][43][44][45][46][50] Piano Concerto No. 24 (Mozart) -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Piano_Concerto_No._24_(Mozart)
[2][5] Mozart and the Golden Age of Music in Vienna | Evanston Symphony Orchestra
https://evanstonsymphony.org/content/mozart-and-golden-age-music-vienna
[3][10][12][18][21][22][25][26][28][31][32][33][34][35][37][38][39][40][47] Mozart, Piano Concerto No. 24 in C Minor Program Notes
https://fcsymphony.org/mozart-piano-concerto-24/
[9][19][29] Mozart's Piano Concerto No. 24 | The Glasshouse
https://theglasshouseicm.org/royal-northern-sinfonia/programmes/mozarts-piano-concerto-no-24/
[11]7 April 1786
https://www.mozartdocuments.org/documents/7-april-1786/
[13][14][16][20] mobclassic.com
https://mobclassic.com/kr/work/work_review.jsp?worksec=a17zaavx
[17][23][24][27][30][36][48][49] Piano Concerto No. 24 in C minor, K. 491, Wolfgang Amadeus Mozart
https://www.laphil.com/musicdb/pieces/2763/piano-concerto-no-24-in-c-minor-k-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