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464

현악 사중주 제18번 가장조, K. 464(“드럼” 사중주)

de Wolfgang Amadeus Mozart

Unfinished portrait of Mozart by Lange, 1782-83
Mozart, unfinished portrait by Joseph Lange, c. 1782–83

모차르트의 현악 사중주 제18번 가장조, K. 464는 작곡가가 29세이던 1785년 1월 10일, 빈에서 완성되었다[1]. 요제프 하이든에게 헌정된 여섯 곡의 사중주 가운데 다섯 번째인 이 작품은, 겉으로 드러나는 새로움보다 조용하면서도 거의 고갈되지 않는 듯한 기지로 더 자주 사랑받는다. 모차르트가 사중주 작법의 “규칙”을 표현적 드라마로 바꾸어 놓는 작품이기 때문이다[2].

배경과 맥락

모차르트의 이른바 “하이든” 사중주—K. 387, 421, 428, 458, 464, 465—는 후원자를 위해 급히 써낸 주문 작품이 아니라, 장르에서 가장 까다로운 빈의 기준을 상대로 스스로를 시험하려는 길고도 의도적인 시도였다. 그 기준이란 요제프 하이든이(특히 Op. 33으로) 새롭게 변모시킨 현악 사중주였다[2]. K. 464는 그 프로젝트의 마지막 응축된 단계—1785년 겨울—에 속하며, 모차르트가 작곡과 교육, 그리고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을 동시에 감당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공적 성공과 사적 존경이 늘 일치하지는 않던 도시에서, 그는 최고의 직업적 압력 속에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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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464를 특히 드러내 보이게 만드는 것은 손쉬운 수사적 “효과”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노골적으로 회화적인 K. 458(“사냥”)과 악명 높은 난해한 서주를 가진 K. 465(“불협화음”)가 포함된 세트 안에서, 이 가장조 사중주는 거의 스스로를 지우는 듯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모차르트의 가장 현대적인 야심이 또렷해진다. 모방, 재조합, 동기의 탄력성을 시험하는 과정 자체가 표현적 서사가 되는 공간으로서의 사중주라는 개념이다. 최근 연구의 한 흐름은, 모차르트가 하이든뿐 아니라 당시 빈 시장과 담론에서 유행하던 이냐츠 플레엘의 새로운 사중주들에도 경쟁적으로 반응하고 있었을 가능성까지 제기한다[3]. 그렇다면 K. 464는 단지 “하이든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 아니라, 1780년대 사중주 작곡이라는 살아 있는 생태계 속에 자리 잡은 작품이다. 그곳에서 독창성은 기교의 세부, 즉 기술적 ‘각주’에서 측정될 수 있었다.

작곡과 헌정

모차르트는 자신의 주제 목록에 K. 464를 “1785년 1월 10일”이라는 날짜와 함께 기록했는데, 이는 K. 465(1월 14일)보다 불과 며칠 앞선 완성을 뜻하며, “하이든” 사중주 가운데 마지막 세 곡이 얼마나 촘촘한 창작의 군집을 이루는지도 확인해 준다[1]. 하이든이 1785년 1월 15일과 2월 12일, 모차르트의 집에서 열린 모임에서 이 새로운 사중주들을 들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4]. 이 가운데 두 번째 모임이 전설이 된 것은 공적인 의미의 초연을 낳아서가 아니라, 사적인 평결이 빠르게 공적인 평가로 굳어지는 순간을 응축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1785년 2월 16일자 편지에서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하이든이 볼프강을 자신이 아는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 평했으며, 취향과 “작곡에 대한 가장 심오한 지식”을 칭찬했다고 전한다[5].

헌정문 자체—1785년 아르타리아(Artaria)의 여섯 곡 사중주 출판본에 실린—는 이 세트를 매우 개인적인 어조로 틀 짓는다. 모차르트가 이 작품들을, 존경하는 연장자에게 맡기는 자식들처럼 세상에 내보낸다는 식이다[4]. 실제로 이 부성적 은유는 미학적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즉 이 작품들은 우연한 오락물이 아니라, 세심하게 “길러진” 결과물이며, 각 성부가 동등해지도록 교육받았다는 것이다.

K. 464에 훗날 붙은 영어 별칭 “드럼” 사중주는 특정한 음향적 디테일을 가리킨다. Andante 변주 중 하나에서 첼로가 스타카토로, 오스티나토처럼 반복하는 음형이 나타나며, 앙상블의 세공 같은 선율 아래에서 건조한 “타타타”를 연상시킬 수 있다[1]. 이 별칭이 시사적인 이유는, 그것이 이 작품에 어울리지 않는 종류의 ‘헤드라인’을 잡아내기 때문이다. 하나의 국지적 효과가 제목처럼 붙어 있지만, 악보의 진짜 드라마는 장거리의 설계와 동기적 규율에 있기 때문이다.

형식과 음악적 성격

I. Allegro (가장조)

1악장의 시작은 거의 당황스러울 정도로 담백하다. 다른 하이든 사중주들 일부에서 볼 수 있는 연극적인 “막 올림” 없이, 균형 잡히고 노래하기 쉬운 생각이 제시된다. 정교함은 그다음에 있다. 모차르트가 얼마나 빠르게 주제를 대화하듯 얽힌 대위로 쪼개고, 얼마나 집요하게 작은 음형들에 큰 구조적 무게를 지우는가에 있다.

이 악장을 듣는 유익한 방식 가운데 하나는 주제적 책무에 대한 연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차르트는 서두를 “반주가 딸린 선율”로 취급하기보다, 그 기본 형상을 계속해서 다른 조명 아래 되돌려 놓는다. 내성부들에 재배치하고, 압축하며, 순차 진행으로 밀어붙이고, 모방으로 엮는다. 그 결과는 학구적 과시가 아니라, 사중주가 소리로 생각하는 듯한 느낌이다. 전제를 시험하고, 고쳐 쓰고, 그다음 더 큰 확신 속에서 돌아온다. (K. 465의 화성적 충격보다 덜 현란하지만, 어쩌면 더 전면적인 이 동기적 통치야말로 연주자들이 K. 464를 “어렵게” 느끼는 이유로 자주 꼽는 요소다. 아무 노력 없이 들리게 만들기가 특히 어렵다.)

II. Menuetto와 Trio (가장조; Trio는 마장조)

많은 고전주의 사중주에서 미뉴에트는 사회적 가면이다. 궁정적 리듬, 예측 가능한 악구. 모차르트는 춤의 윤곽을 유지하되, 촘촘한 모방과 화성적 비켜가기로 그것을 채워, 단일한 리더라는 관념에 은근히 저항한다. 귀는 끊임없이 내성부로 끌려가는데, 작은 모방적 진입들이 “모두가 들리길 요구하는” 대화의 감각을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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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o가 마장조로 이동하는 것(가장조의 궤도 안에서 밝게 중음 관계를 이루는 조성)은 갑자기 공기가 개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1]. 하지만 여기서도 모차르트는 단순한 이완을 피한다. 투명한 짜임은 미세한 리듬적 어긋남과 성부 진행의 선택을 오히려 노출시키며, 그것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이유는 그만큼 치밀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III. Andante (라장조), 주제와 변주

Andante는 이 사중주의 표현적·지적 중심이다. 라장조의 주제와 변주가, 이례적으로 3악장 위치에 놓여 있다[1]. 주제 자체는 친밀함이 두드러진다. 절제된 다이내믹과, 오페라 아리아라기보다 사적인 말처럼 느껴지는 선율 윤곽.

여기서 모차르트의 변주 기법은 주로 장식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능에 관한 것이다. 각 악기는 반주를 둔 독주자가 아니라, 잠시 동안 사중주의 위계를 재조직하는 행위자로 전면에 선다. 청자는 반주 패턴이 어떻게 선율적 주장으로 바뀌는지, “배경”이 어떻게 논지가 되는지 추적할 수 있다. 유명한 “드럼” 효과—소용돌이치는 움직임 아래 첼로가 건조하게 반복음을 두드리는—는 더 큰 전략의 일부다. 색채를 위한 색채가 아니라, 주제의 바닥을 바꾸어 앙상블의 수사가 새롭게 위태롭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방식이다[1].

이 악장의 후대 영향은 유난히 구체적이다. 베토벤은 K. 464를 자신의 가장조 사중주 Op. 18 No. 5를 위한 모델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조성적·반음계적 긴장을 다루는 모차르트의 방식을 연구했는데, 그 결과는 “고전적 명료함”을 넘어 그의 중기 양식이 즐겨 만드는 문제적 절차로까지 이어지는 듯 보인다[6]. 이는 Andante의 겉보기 고요가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모차르트는 복잡성을 피함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통제함으로써 평정을 성취한다.

IV. Allegro non troppo (가장조)

피날레는 Allegro non troppo로 표시되며, “너무 많이는 말 것”이 함축하는 절제는 미학적으로도 정확하다. 이는 눈부시게 결승선을 향해 질주하는 마무리가 아니라, 결론에 이르는 논증이다. 여기서 모차르트의 공예는 거의 건축적이 된다. 음형들이 결합되고 재결합되는 방식 때문에, 표면이 반복되는 듯해도 악장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중”으로 느껴진다.

주목할 만한 분석적 관찰 하나는, K. 464가 사중주의 바깥 악장들에서 주제적 재료가 고정된 음고로 되돌아오는 방식을 유난히 엄격하게 탐구하며, 회귀를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구조 원리로 만든다는 점이다[6]. 연주에서 그 결실은 은근하지만 강력하다. 사중주는 세련됨을 큰소리로 덮어버리며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련됨이 누적되어 결정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끝난다.

수용과 유산

K. 464가 때로는 이웃 작품들(“사냥”, “불협화음”)의 그늘에 가려 살아왔더라도, 음악가들 사이에서의 위신은 오래전부터 다른 종류였다. 과장된 볼거리 없이도 매 마디가 스스로를 정당화해야 하는, 작곡적 “클린룸” 사고의 시금석으로서의 사중주라는 위신이다. 모차르트를 하이든뿐 아니라 플레엘과의 대화 속에 놓는 연구는, 이 작품이 왜 이렇게 비연극적으로 들리면서도 동시에 날카롭게 겨눠지는지 설명해 준다. 이는 사중주 양식들이 경쟁하던 시장을 향해 쓰인 작품이되, 그 경쟁에 새로움이 아니라 깊이로 답한 작품이다[3].

역사적으로 하이든 사중주의 신화는 흔히 1785년 2월 하이든이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 했다는 찬사에 중심을 둔다. 그 이야기가 훗날 어떤 미화가 덧붙었든, 인식의 वास्तविक한 변화를 포착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빈에서 여전히 주로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이자 오페라 작곡가로 알려져 있던 모차르트가, 여기서는 “학구적” 기악 작법의 대가로 인정받는 것이다[5]. K. 464가 그 인정에서 결정적인 이유는, 배움을 성격으로서 들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대 연주 문화에서 K. 464는 종종 ‘아는 사람들의’ 모차르트 사중주로 다뤄진다. 앙상블들은 이를 통해 아티큘레이션의 일치, 내성부 균형, 과장 없이 긴 호흡을 투사하는 능력을 입증하려 한다. 따라서 가장 빛나는 녹음은 Andante를 과도하게 낭만화하기보다 변주의 과정이 스스로 말하게 두는 경우가 많다. 청자가 이 작품에서 모차르트의 가장 급진적인 전제를 듣게 하기 위해서다. 즉 동등한 네 성부가 함께 사고할 때, 그것은 어떤 무대 못지않게 극적일 수 있다는 전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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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ikipedia: String Quartet No. 18 in A major, K. 464 (date in Mozart’s thematic catalogue; movements; “Drum” nickname).

[2] Cambridge Core (book chapter): “Genesis of the ‘Haydn’ quartets” (context and formation of the set).

[3] Oxford Academic (Music & Letters): “Replacing Haydn: Mozart’s ‘Pleyel’ Quartets” (argument about Pleyel’s Op. 1 as an additional context for K. 464).

[4] Wikipedia: Haydn Quartets (Mozart) (set, dedication context, documented gatherings where Haydn heard the quartets).

[5] Wikipedia: Haydn and Mozart (includes Leopold Mozart’s 16 Feb 1785 report of Haydn’s praise).

[6] Cambridge Core (Eighteenth-Century Music): “What Beethoven learned from K464” (analysis of K. 464’s rigorous thematic/tonal procedures and Beethoven’s respo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