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finta giardiniera* (K. 196) 중 D장조 피날레: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51번’ 오명
by Wolfgang Amadeus Mozart

소위 ‘D장조 교향곡 제51번 피날레’로 불리는 모차르트의 이 곡은, 그 기원과 의도에 있어 그의 초기 dramma giocoso 오페라 La finta giardiniera (K. 196)의 막바지를 장식하는 종결 앙상블이다. 이 작품은 뮌헨의 사육제 시즌을 위해 쓰였고 1775년 1월 13일 초연되었다. 무대와 떼어놓고 들으면 응축된 교향곡 피날레처럼 들릴 수 있지만, 맥락 속에서는 18세 모차르트의 극적 본능이 빠르게 전개되는 희극적 혼란과 음악적 화해의 그물망으로 결정화된 결과물이다.
배경과 맥락
“D장조 교향곡 제51번”이라는 제목은 후대에 붙은 실용적 표기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마치 독립된 교향곡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의 음악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La finta giardiniera (K. 196)에 속한다. 이 작품은 1774–75년 겨울 뮌헨을 위해 쓰인 이탈리아어 dramma giocoso(“희극적 드라마”)로, 1775년 1월 13일 살바토르테아터에서 초연되었다.12 현대의 목록과 판본들은 La finta giardiniera를 무엇보다 무대 작품으로 취급하며, 발츠부르크/뮌헨의 연대기를 이해하는 것이 왜 일부 발췌가 훗날 연주회장으로 흘러들어 갔는지를 파악하는 데 핵심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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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잘못된 명명은 왜 일어났을까? 18~19세기에는 서곡, 합창, 피날레를 극적 맥락에서 떼어내 가정 음악이나 공개 연주회에서 연주하는 일이 흔했다. 이런 발췌가 독자적으로 유통되면서—때로는 편곡본으로, 때로는 패스티시 형태의 ‘교향곡’ 묶음으로—원래의 극적 기능을 가려버리더라도 제목이 관행으로 굳어지는 일이 있었다.
이 피날레가 특히 주목할 만한 이유는, 그것이 전환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는 여전히 18세기 중엽 이탈리아 코믹 오페라의 관습 안에서 작업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미 장거리 호흡의 앙상블 구조를 놀라울 만큼 자신 있게 다루고 있다. 즉 여러 인물을 음악적으로 ‘무대 위에’ 동시에 올려놓고 각자의 정서적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도, 음악의 추진력을 잃지 않는 능력을 보여준다.
작곡과 의뢰
La finta giardiniera는 바이에른 궁정의 사육제 시즌을 위해 작곡되었다. 모차르트는 1774년 12월 초 뮌헨으로 이동했으며, 그곳에서 1775년 1월에 오페라를 완성했다.4 그는 아직 19세가 되기 전이었고(생일은 1756년 1월 27일), 이 악보는 10대 시절 그가 시도한 가장 야심찬 극음악 작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1
대본은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라니에리 데 칼차비지에게 귀속되곤 했으나, 오늘날에는 대체로 주세페 페트로셀리니와 관련된 것으로 본다(이미 1774년에 파스콸레 안포시가 사용한 바 있다). 다만 저작권 귀속과 개작의 문제는 여전히 이 오페라 문헌사의 일부로 남아 있다.56
3막 구성 속에서 이 피날레는 모든 매듭을 조이는 종결 앙상블로 기능한다. 변장, 오인, 질투, 계급적 긴장이 하나의 가속하는 음악적 논변 속에 압축되어야 하는 순간이다. 텍스트에서 분리했을 때 이 발췌가 ‘교향곡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압축 압력 때문이다.
대본과 극적 구조
dramma giocoso인 La finta giardiniera는 진지하고 때로는 멜로드라마적인 과거사를, 희극적 표면의 사건 전개와 섞어 놓는다. 중심 설정—귀족 여성이 정원사로 변장해 있는 상황(“가짜 정원 처녀”)—은 오해의 엔진을 만든다. 인물들은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거나, 혹은 알면서도 인정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엇갈린 대화를 이어간다.
3막 피날레(종종 첫 가사 “Fra quest’ombre…”로 유통됨)는 무대 위의 빠른 동선을 위해 설계되어 있다. 잦은 등장과 퇴장, 갑작스러운 인식의 전환, 그리고 혼란에서 해결로 향하는 집단적 이동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7 극적으로 이 피날레는 한 인물의 심리 묘사보다 상황 자체에 더 가깝다. 진실이 가면을 뚫고 나오려는 순간, 공동체 전체가 실시간으로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핵심이다.
무대 없이 음악만 접하는 청자에게도 특히 눈여겨볼 만한 점 두 가지가 있다.
- 대본은 아주 짧은 간격으로 정서의 급격한 대비(경계, 다정함, 분노, 집단적 경악)를 요구하며, 모차르트는 독백적 발화, 2중 대화, 전원 앙상블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며 이에 응답한다.
- 이 피날레의 수사는 ‘사회적’이다. 인물들은 사랑만큼이나 지위와 권위를 두고 협상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위계를 ‘듣게’ 만든 뒤, 점차 그것을 앙상블의 공유된 음악 공간—합의와 조화—속으로 녹여낸다.
음악적 구조와 핵심 요소
이 피날레는 18세기 후반의 확장된 코믹 오페라 앙상블 전통에 속하며, 그 추진력은 축적에서 나온다. 더 많은 목소리, 더 많은 상충하는 의도, 더 촘촘해지는 리듬의 활력. 판본과 공연 관행에 따라 내부 구획이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지만, 전체를 지배하는 원리는 분명하다. 박수로 닫히는 독립된 ‘아리아’가 이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소규모 에피소드들이 맞물려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지는 형태다.
모차르트 초기 오페라 작업 가운데 이 피날레의 독특한 위상을 설명해 주는 몇 가지 음악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앙상블 극작법 자체가 ‘본편’이 된다. 동시대의 많은 코믹 오페라에서 앙상블은 기능적인 마무리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이라이트다. 모차르트는 피날레를, 선율만이 아니라 대위법과 페이싱을 통해 성격이 드러나는 자리로 만든다.
- 성숙기 무대 작품을 예고하는 관현악적 색채. 동시대의 평가와 현대의 연주 전통은 모두 이 오페라에서 관악기의 역할이 특히 능동적이라는 점—단순한 화성 채움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피날레는 성악 아래에서 오가는 이런 ‘바쁜’ 관현악 대화를 통해 큰 이득을 본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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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장조의 극적 밝음—그러나 반전과 함께. D장조는 18세기에 전형적인 ‘공적’ 조성으로(의례적 광채와 야외적 울림과 연결됨) 피날레에서 그 밝음은 곧 해결감을 의미한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그 과정에서 어둠과 교란을 끼워 넣을 줄 알며, 대비를 통해 마침내 도달하는 광채가 ‘획득된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 곡이 때때로 ‘교향곡 피날레’로 소개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무엇이 교향곡적이지 않은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 음악은 텍스트, 극적 타이밍, 무대 동작의 조율 필요에 의해 추진된다. 절정도 순수한 종지 전략보다는 집단적 ‘인식’의 순간에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 점이 이 발췌를 탁월한 연주회용 레퍼토리로 만든다. 극적 전기가 그대로 딸려 나오기 때문이다.
초연과 수용
La finta giardiniera의 초연은 1775년 1월 13일 뮌헨 살바토르테아터에서 이루어졌다.12 당대에 이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훗날 다 폰테 오페라들처럼 지속적인 ‘표준 레퍼토리’로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매우 정교한 초기 작품으로 점차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Idomeneo와 Le nozze di Figaro 이전을 단순히 ‘소년기 작품’으로만 보는 서사를 복잡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피날레의 이후 삶은 바로 이런 재평가의 일부다. 오페라에서 떼어놓으면 연주회용 곡처럼 읽히기도 하며, 그 때문에 교향곡 번호 전통과의 혼동이 뒤따랐다.9 그러나 극적 방향감 속에서 들으면, 1775년의 모차르트에게 이미 확립되어 있던 결정적 능력이 드러난다. 즉 많은 인물이 동시에 말하게 하되(음악적으로), 명료함을 잃지 않는 능력이다. 오늘날 청중에게 이 앙상블 솜씨는, 이 ‘피날레’가 목록상의 이름을 넘어 주목받아야 할 가장 강력한 이유가 된다. 모차르트가 오페라적 과밀함을 음악적 빛남으로 바꾸는 법을, 공개적으로 배워 가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1] Wikipedia: La finta giardiniera — overview, date and venue of premiere (13 Jan 1775, Salvatortheater, Munich).
[2] MozartDocuments (Dexter Edge): documentation and commentary on early performances; confirms 13 Jan 1775 premiere via Mozart’s correspondence and other records.
[3] Mozarteum Köchel Catalogue (KV): La finta giardiniera, KV 196 — work entry and New Mozart Edition references.
[4] Cambridge University Press (front matter/chronology): Mozart’s trip to Munich (6 Dec 1774) and first performance date (13 Jan 1775).
[5] Wikipedia: La finta giardiniera (Anfossi) — notes that Anfossi’s 1774 opera used Petrosellini’s libretto, relevant to libretto attribution history.
[6] Dutch National Opera Academy programme (PDF): credits libretto to Giuseppe Petrosellini; reiterates first performance details (Munich, 13 Jan 1775).
[7] Digital Mozart Edition (Mozarteum): libretto edition PDF listing No. 23 Finale and its opening text (“Fra quest’ombre…”).
[8] Naxos Video Library page (Drottningholm 1988): notes the score’s rich orchestration and prominent wind parts.
[9] Spanish Wikipedia: Sinfonía en re mayor, KV 196+121 — explains later ‘Symphony No. 51’ association with material from La finta giardiniera and related appendage numbering traditions.








